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19세기는 모진 박해와 순교의 피로 젖어 있던 시기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조선 땅에 들어와 복음을 전파했던 여러 외국인 선교사들 가운데, 제5대 조선교구장이었던 성 다블뤼 안토니오(안돈이, 安敦伊) 주교는 선교사로서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의 귀중한 역사를 기록해 후대에 전한 목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 조선에 머물며 묵묵히 신자들을 보살피고, 박해의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여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기틀을 다진 다블뤼 주교의 생애와 업적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헌신과 선교의 시작 조선 땅을 향한 여정
프랑스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난 다블뤼 주교는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해외 선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함께 작은 라파엘호를 타고 목숨을 건 항해 끝에 1845년 조선 충청도 강경에 입국했습니다.
입국 이후 그는 충청도 당진의 신리 마을(현 신리성지) 등을 거점으로 삼아 2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선에 거주했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교사 중 가장 오랫동안 사목을 펼친 기록입니다.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습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전통 문화와 풍습, 밥을 나눠 먹는 백성들의 따뜻한 공동체 의식을 깊이 존중하며 사목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조선 순교사 기록 후대에 남긴 거룩한 유산
다블뤼 주교가 한국 교회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순교자들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1850년대부터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등을 겪은 신자들과 목격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생생한 증언을 수집했습니다. 박해의 위험과 열악한 건강 상태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행적, 신문 기록, 옥중 서간 등을 고증하여 《조선 순교자 비망기》를 저술하고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냈습니다.
이 소중한 기록들은 훗날 샤를 달레 신부가 저술한 《한국 천주교회사》의 바탕이 되었으며, 한국의 순교자들이 세계 교회의 성인(103위 성인)과 복자 품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사적 증거자료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펜 끝에서 한국 천주교의 거룩한 뿌리가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문서 선교 한글 교리서와 사전에 바친 정성
다블뤼 주교는 신자들의 영적 성장과 교육을 위하여 다양한 문서 선교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 한글 교리서 및 묵상서 저술: 최양업 신부 등의 도움을 받아 한국 천주교회 공식 교리서인 《성교요리문답》을 비롯해 신자들의 고해성사와 영적 생활을 돕는 《회죄직지》, 《신명초행》 등 다수의 한글 서적을 편찬 및 간행했습니다.
- 한불사전 편찬의 기초: 조선어와 프랑스어를 잇는 언어적 토대를 다지기 위해 《한불자전》 편찬 작업을 착수하여 정리 작업을 진행하였고, 이는 훗날 최초의 한불사전이 완성되는 기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한글로 된 서적을 보급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서민들과 여성 신자들도 쉽게 교리를 익히고 영성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병인박해와 갈매못에서의 장렬한 순교
1866년 병인박해가 발작하면서 제4대 교구장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자, 다블뤼 신부는 제5대 조선교구장직을 승계하였습니다. 그러나 교구장에 오른 지 불과 20여 일 만에 충청도 신리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참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는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바치며 의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당시 고종의 국혼을 앞두고 한양에서 피를 흘리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충청도 보령의 갈매못 수군재판소로 이송되었습니다.
1866년 3월 30일 주님 수난 금요일, 다블뤼 주교는 함께 체포된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과 함께 군문효수형을 받고 장렬히 순교하셨습니다. 그의 나이 47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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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블뤼 주교가 전하는 영적 교훈
다블뤼 주교의 삶은 낯선 이국땅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한 진정한 목자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신앙, 그리고 신자들의 거룩한 희생을 잊지 않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기울인 문서 기록의 정성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충남 당진의 신리성지와 보령의 갈매못성지는 지금도 그의 숭고한 헌신과 순교 정신을 기리는 거룩한 성지로 보존되어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